'일상의깨달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7.09 #01. 밥솥처럼 화낼 수 있다면... 1

 

 

"칙칙, 칙칙, 치....익... 칙..칙.....칙"

수년째 사용하고 있는 밥솥에서 오늘 따라 이상하게 소리가 났다. 
그간 밥지을 때 들어왔던 규칙적인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 막힌 듯한 앓는 소리. 

그래도, '조금 두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에
5분쯤 지켜보았을까?
글쎄.. 갈수록 더 먹먹한 소리가 난다. 

'푸.....치키...치.....치..칙...칙칙..푸.....'

필시 무언가 막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두꺼운 오븐용 장갑을 끼고 
동글동글 돌아가는 압력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살짝 기울였다. 

"췻--!"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냉면의 톡 쏘는 겨자소스처럼
증기배출구에서 하얀 김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아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평소에 이 정도로 빨랐나, 싶을 정도로 
압력추에서 손을 뗀 것은 물론이고.

놀란 마음을 다독이다 
문득, 이 밥솥이, 화를 내는 내 모습, 
내 주변 관계와 닮았다 느껴졌다.

직장생활하다가 무언가 답답해도, 
가족과 대화하다가 무언가 억울해도, 
친구에게 무언가 서운해도, 
속으로만 끅끅거리며 
차곡차곡 분노를 담아두었다가

어느 한 타이밍에
누군가 내 압력추에 손대면 톡, 하고
쏘아버리는 내 모습. 
그런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
뒤로 숨어버리던 주변 사람들. 

* 그 땐 그게 그렇게 서운했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다음 날, 밥을 앉히기 전에 밥솥을 안팎으로 살피고, 
청소용 핀으로 구석구석 닦아주고
특히, 압력추 주변을 닦아주었다, 

'칙칙, 칙칙, 칙칙, 칙칙, ..'

다시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 

화도 꾹꾹 참고 있으면 병이난다. 
때때로 밥솥 구석구석을 살피듯
화가날 땐, 잠깐 멈춰서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막히고 답답한 부분을 살펴줘야 한다.

조금만 더 나아가 화를 낼 땐,
이 밥솥처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참았다가 터뜨리는 분노, 격노 말고, 
내 안에 있는 불편함을 '칙칙' '칙칙' 부드럽게,
조금씩, 내보내면서, 살뜰히 살펴주면서
그렇게, 밥솥처럼. 
때에 따라 적절하게 증기를 내보내듯이..

그럴 때, 나의 관계도 맛있지 않을까?
규칙적으로 증기를 내뿜어야
마침내 맛있는 밥이 지어지는 것처럼

 

 

 

 


 

삶의 이야기를 다시 용기내어 시작해보려고요. 
엉뚱이의 ADHD관리와
요즘의 배움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 조금씩 다시 풀어볼게요. :D


Posted by 이상한 나라의 엉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