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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1 [이상한 나라의 엉뚱이] 탕자의 귀환, 그의 컴백... 6




램브란트, 탕자의 귀환

출처: Google 이미지검색




난, 그의 컴백이 반갑다가 싫어졌다.

힘들어졌다.







우리 집엔 탕자가 있습니다. 돌아왔으니 있었습니다. 가 맞겠지요.

성서에 나오는 탕자는 작은 아들인데 우리집 탕자는 큰 아들입니다.

저는.. 그 탕자의 귀환이 반갑다가 너무 싫어졌습니다.




#1. 그의 전화


어제 그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업무중이기도 했거니와 받기 싫었거든요. 

그리고 어떻게 지켜온 평정인데, 그의 전화를 받고 분노하며

한동안 정신 없을 내가 싫어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엄마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오빠전화왜안받니?조금있다가

오빠가전화할테니잘받어!


오빠 전화를 엄마의 명령까지 받아가며 받아야 한다는 것이 몹시도 불쾌했지만,

일단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후후, 심호흡 하면서요.


퇴근 길, 만원지하철.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후후, 심호흡을 몇번이나 하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 화내지 않는거야.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전화만 받는거야.'


딸깍.

"너는 내 전화를 받기가 싫은가보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껏 비아냥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들려왔습니다.


"일하느라 못받은건데 왜 그렇게 얘기하지?"

침착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마음 속 분노가 튀어나와 혀가 꼬이고 말이 뒤틀렸습니다.


전화의 요지인 즉,

오늘 집에 들어갈테니.. 좀 도와달라는 거였습니다.

늘 전화하고도 들어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넘겼습니다. 



#2. 퇴근 후 있었던 일.




퇴근 후,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집에 들어와 밥을 먹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거라곤 시어빠진 김치와 콩자반, 도시락김 밖에 없었지만..

몸을 생각하자는 멘토님과의 약속과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렌지에 밥을 돌렸습니다.   우걱우걱, 혼자서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10시가 되도록 오질 않기에 설거지나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청해야 겠다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덜컹.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후, 누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인기척은 없습니다.

설거지를 멈추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거실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살폈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침착하게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찾았습니다.


분명, 누군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한 5분 후, 사라집니다.




그렇게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온다던 오빠는 오지 않습니다.





#3. 그의 컴백, 가족구성원의 재회.




얼마나 지났을까요? 씻고 자려던 찰라, 그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독대를 합니다.

나는 그 살얼음같은 분위기가 싫어서 내 방에 콕 틀어박혔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그의 수많은 사채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 그의 소비습관에 넌덜머리를 내고, 다시는 아들을 보지 않겠다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그도 아버지를 더 이상 빚을 갚아주지 않는 아버지를, 내 돈 400만원을 가지고 주지 않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뛰쳐나갔기에..

그 둘의 만남은 나에게 긴장감을 가져다 주기 충분했습니다.




방에 틀어박혀서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가 나를 거실로 부르십니다. 엄마도 부르십니다.

아버지가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내용인 즉, "나는 그를 용서한지 꽤 되었다, 그가 좀 늦게 찾아온 것 뿐이다.

그를 믿어주자, 전의 그와 다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안아주자. 서로 노력하자.

노력한 집사람 고생많았다. 나도 노력하겠다."




그 얘기를 듣는 내 얼굴은 의심 반, 안도 반. 복잡한 얼굴로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극적인 용서와 화해 무드도 나에게는 어리둥절했을 뿐더러..

처음으로 가족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인 시간이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선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나도모르게... 나는 아직도 그를 믿을 수 없기에 

속으로, 지켜보겠다는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4. 그의 부탁, 그를 향한 쏟아지는 관심.



그리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부탁인 즉, 내일은 연애 100일인데 이벤트를 하려는데 글재주와 솜씨가 없으니

스케치북에 편지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연애얘기를 듣고,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알던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정도로

말투며, 자세며,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방심하면 안됐는데... 말입니다.




한참 연애얘기를 듣고, 좀 달라졌나보다. 도와주자. 했습니다.

엄마도 오빠방에 들어옵니다.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출근은 언제 하는지, 연애한지는 얼마나 됐는지, 등등... 

한참을 얘기하더니 다음 날 본인도 일찍 일어나야 된다며 알람서비스를 약속하고 방에 들어가 주무셨습니다.




엄마가 방에 들어가시고 나서 그는 나에게 그 부탁을 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잠들었습니다.

화는 났지만,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 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과 글을 다 쓰고 나서 잠드니 새벽 2시. 

내 방에 돌아와 반쯤 감긴 눈으로 알람을 맞추며 이게 뭔짓인가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바뀐 그를 기대해 보기로 했으니까요. 이젠 좀 달라졌나 싶었으니까요.







#5. 눈으로 확인해 버리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어제 잠을 못자서 늦잠을 잤고,

엄마는 약속대로 오빠를 깨워 아침까지 먹였습니다.  

나에게는 대화 할 때도 딴데 쳐다보며 눈 길 한 번 주지 않던, 알람서비스는 커녕, 아침을 깨우지 않던 그 엄마가

아침에 씻느라 분주하면 짜증을 냈던 그 엄마가.. 말입니다.   엄마는 본인도 일찍 준비해야 한다셨는데... 잠옷차림이었습니다.

설상가상. 나에게 부탁하고, 잠들었던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땡큐" 딱 한마디를 건냈습니다.



엄마는 오빠를 좋아합니다. 

나는 엄마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녀석입니다. 그녀의 말로 직접 확인해주었듯.

그런데 오늘 나는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더 명확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출근준비로 부산한데.. 마음은 더 꽁기꽁기해졌습니다.

큰 아들의 마음이 백번 이해되는 시간이었습니다.







#6. 내 안의 큰 아들의 마음을 발견하다,





그렇게 사고를 쳤고, 문제를 일으키고 경찰,검찰,.. 다 드나들었던 그는 저렇게 사랑받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는데

나는 이 집구석에서는 뭘 해도 미움받고, 걍 쥐죽은듯이 살아도 미움받는구나. 는 마음이 들자..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식탁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와 오빠를 보고

나도 아들이고 싶다는 그런 얼토당토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가정에 어제 급 화해무드가 조성되어.. 

또 희망을 걸었던 내 자신이 참 바보같았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억울하고, 그가 부럽습니다.

나도 한 번 받아보고 싶은 그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얄밉습니다.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엄마도.. 밉습니다.




그의 컴백이, 달라진 그의 모습이 반가웠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싫어졌습니다. 나는 불편해졌습니다. 



언제 또 이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그의 컴백 이후로,

내 안에.. 큰 아들의 마음이,

어렸을 적 그가 나에게 저질렀던 그 큰 잘못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나로선.. 그 감정의 골이 너무나 커서 아빠의 그 어려운 결정, 탕자를 용서하는 것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난.. 오빠를 용서하려면 아직..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의 컴백이 어렵게 유지했던 내 잔잔한 마음에 바위 하나를 던진 셈입니다.



네, 이 또한 지나가겠죠, 이 모든게 훈련이겠지요.

분노를 쉬게하는 지혜를 배우는 시간일테지요.


하지만, 나는 아직 오빠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이상한 나라의 엉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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